
러시아의 거장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2014년 작품 『리바이어던(Leviathan)』은 개인 대 국가, 인간 대 시스템, 진실 대 위선의 충돌을 묘사한 걸작 사회 드라마다. 영화는 북부 러시아의 한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자신의 집과 삶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개인이 처한 무력함과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철저히 해부한다. 제목 ‘리바이어던’은 성경과 철학에서 유래된 상징으로, 통제 불가능한 권력의 괴물로서 국가 시스템과 종교의 억압적 구조를 지칭한다. 영화는 이러한 상징을 기반으로, 현대인의 삶에 깊은 질문을 던진다.
절대 권력 앞에 무너지는 개인
영화의 주인공 콜랴는 바닷가 마을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아내,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하지만 마을 시장이 그의 땅에 관심을 갖고 강제 수용을 시도하면서 그의 일상은 무너진다. 콜랴는 친구이자 변호사인 드미트리를 불러 법적으로 대응하려 하지만, 법은 이미 권력의 손아귀에 장악되어 있다. 판사, 검사, 경찰, 교회까지 모두 시장과 한편이다. 영화는 법과 정의의 이름 아래 저질러지는 권력의 폭력을 냉정하게 묘사한다. 콜랴는 점점 모든 것을 잃어간다. 아내는 시장과의 부적절한 관계 속에 무너지고,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멀어지고, 법정에서는 패소하고, 마지막에는 살인 혐의까지 뒤집어쓰게 된다. 그의 삶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콜랴를 통해 국가 권력 앞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법원 장면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기계적인 목소리로 판결문을 낭독하는 판사, 공정함은커녕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흘러가는 재판 과정은 현실의 냉혹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묘사는 러시아 사회를 겨냥했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 전반의 문제—형식에 갇힌 정의, 권력의 일방성, 시스템에 종속된 개인—을 보편적으로 드러낸다. 콜랴의 투쟁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그 실패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정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철학적 질문으로 전환된다. 이 질문은 단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 우리가 믿는 제도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자각을 요구한다.
위선적인 종교와 인간의 도구화
『리바이어던』의 또 다른 축은 종교이다. 영화에서 교회는 정의와 도덕의 수호자가 아니라, 권력을 정당화하고 억압을 덮는 도구로 등장한다. 시장은 대주교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교회는 그의 범죄를 신의 뜻으로 포장한다. 콜랴는 교회로부터 위로를 받기는커녕, 더욱 큰 절망과 냉대 속에 방치된다. 성직자의 설교는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은 권력을 옹호하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감독은 화려한 성당 내부의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종교적 상징이 가진 시각적 아름다움과 그 내부의 윤리적 공허함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만들어낸다. 교회는 신의 이름으로 억압을 합리화하고, 사람들에게 순응과 인내를 요구한다. 영화 속 콜랴는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고통 속에서 신을 찾으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다. 이러한 침묵은 욥기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욥이 아무 잘못 없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을 향해 질문을 멈추지 않았듯, 콜랴 역시 절망 속에서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종교적 위로가 아니라, 종교가 만든 질서에의 복종이다. 종교는 그 본래의 역할, 즉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서 진실과 연대를 말해야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권력의 언어를 되풀이할 뿐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관객은 묻게 된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침묵하는가? 종교가 진실을 외면할 때,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성과 운명, 그리고 현대의 욥기
『리바이어던』은 명백히 욥기의 현대적 해석이다. 이유 없이 고통을 겪는 인간, 절망 속에서도 신에게 묻는 인간, 그리고 그 질문에 침묵하는 신. 콜랴의 삶은 욥과 같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침묵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이다. 감독은 광활한 자연, 차가운 바다, 폐허가 된 집터, 거대한 고래 뼈를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작고 연약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살아 있음’의 의미,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내면의 울림을 담고 있다. 이러한 연출은 자연과 인간의 대조, 그리고 인간성과 운명의 충돌을 철학적으로 보여준다. 콜랴는 최후에 모든 것을 잃는다. 그는 집을 빼앗기고, 아내를 잃고, 아들과도 단절된다. 심지어 살인 혐의로 체포되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진다.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거짓과 위선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은 그를 삼켰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리바이어던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성의 반전이자 아이러니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권력과 종교, 제도와 인간 사이의 충돌을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그 안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단지 콜랴의 삶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사회, 그리고 우리가 믿고 살아가는 시스템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리바이어던』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메시지는 국경을 초월한다.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 위선을 덮는 종교, 무력한 정의와 허망한 저항 속에서도 인간은 끝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냉정하고 차가운 리얼리즘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와 존엄에 대해 질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이며, 반드시 한 번은 마주해야 할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