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2007년 작품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는 미국 자본주의의 뿌리, 인간 욕망의 본질, 종교와 권력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탁월한 연출과 상징으로 녹여낸 명작입니다. 석유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 남자의 광기와 고립, 몰락의 서사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본질을 통렬히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역사적 배경, 주요 인물 분석, 영화계 및 문화적 평가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며, 이 작품이 왜 현대 서부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지 조명해 봅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태동기와 상징적 배경
영화의 시작은 1898년, 캘리포니아의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가 말없이 홀로 광산을 파내며 은광을 탐사하는 장면입니다. 이 침묵의 시퀀스는 무려 15분 가까이 대사가 없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미국 산업화의 상징인 ‘개척정신’과 ‘자수성가’ 신화를 시각적으로 압축해 보여줍니다. 하지만 앤더슨 감독은 이 신화를 찬양하지 않고, 그 어두운 이면을 파헤칩니다.
배경이 되는 캘리포니아는 20세기 초 석유 산업이 급성장하던 지역으로, 실제로도 수많은 부자들이 이 땅에서 탄생했습니다. 영화는 이 시기 미국의 경제적 욕망과 종교적 위선을 교차시켜 보여주며, 그 중심에 ‘석유’라는 검은 자원을 놓습니다. 석유는 단지 부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 이기심, 가족 해체, 윤리의 파괴까지를 모두 상징하는 매개체로 작동합니다.
또한 영화에서 ‘교회’는 단순히 종교적 장소가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라이 선교사는 지역 사회의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로 움직이며, 교회 역시 자본처럼 이용됩니다. 특히 교회의 기둥과 석유 우물 구조물이 시각적으로 대비되는 연출은 종교와 자본이 물리적으로, 이념적으로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상징합니다.
즉, **‘There Will Be Blood’**라는 제목은 단순한 폭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 땅의 피(석유), 종교와 자본의 피비린내 나는 대립까지 포함한 다층적 의미로 해석됩니다.
인물 분석: 다니엘 플레인뷰와 일라이 선교사
**다니엘 플레인뷰(Daniel Plainview)**는 20세기 초 미국 자본가를 집약적으로 형상화한 인물입니다. 그는 냉혹하고 집요하며, 무엇보다 ‘신뢰’라는 단어를 믿지 않는 인간입니다. 입양한 아들 H.W. 를 이용해 가족적인 이미지를 연출하지만, 정작 아들이 장애를 갖게 되자 그를 멀리하고, 의사소통마저 거부합니다. 가족, 신념, 도덕을 모두 ‘거래’의 대상이자 도구로 취급하는 그에게 인간성은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다니엘은 극도로 고립된 인물입니다. 그는 동료도,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직 ‘성공’이라는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영화 후반부, 그의 저택에서 와인을 마시며 “나는 사람을 싫어해. 나는 대부분의 사람을 증오해. “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인간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인물의 종착지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그의 파멸이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합니다.
**일라이 선교사(Eli Sunday)**는 또 다른 의미의 ‘광신자’입니다. 그는 신을 내세우지만, 실은 권력과 통제를 갈망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경제적 대가를 요구하며, 자기 확신에 찬 설교로 군중을 이끕니다. 그는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조작과 위선을 통해 성장하며, 결국 서로를 거울처럼 반사하게 됩니다.
이 두 인물은 전통적인 ‘선악’ 구도로 나뉘지 않습니다. 둘 다 욕망에 충실하고, 둘 다 진실보다 체면과 권력을 택하며, 결국 서로를 파괴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다니엘이 일라이를 골프장에서 살해하며 “I’m finished.”라고 선언하는 순간, 이는 단순한 살인의 완성이나 복수가 아닌, 그들 두 세계(자본과 종교)의 공멸을 의미합니다. 이 결말은 인간이 만든 구조가 결국 인간을 삼키는 구조임을 철저히 고발합니다.
영화사적 의의와 비평가들의 반응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순한 영화가 아닌, 영화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2007년 개봉 당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함께 아카데미를 양분한 이 작품은 미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 영화 평론계로부터 격찬을 받았습니다.
-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영화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그 연기는 지금까지도 “21세기 최고의 캐릭터 구축”으로 회자됩니다. 그는 실제로 수개월 동안 광산 기술과 음성 훈련을 받았으며, 인물의 정서적 붕괴를 완벽하게 체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로 할리우드의 젊은 거장으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스탠리 큐브릭 이후 가장 완성도 높은 미장센 설계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윗(Robert Elswit)**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촬영상 수상에 성공했고, 압도적인 자연광 활용과 인물 중심의 구성으로 시각미를 완성시켰습니다.
- 음악은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Johnny Greenwood)**가 담당하였으며, 전통적인 사운드트랙과는 다른 불협화음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심리적 공포와 몰입감을 더합니다.
이 영화는 이후 많은 영화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상징을 사용하는 법’, ‘사운드와 미장센의 조화’, ‘인물 중심의 내러티브 설계’에서 교과서적 사례로 인용됩니다.
결론: 피와 석유로 뒤덮인 인간성의 초상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지 한 명의 기업가가 성공하고 몰락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인간이 가진 근원적 욕망, 그리고 자본과 종교가 만들어낸 허위적 질서에 대한 통렬한 탐구입니다. 영화는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재해석하여, 영웅 신화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고독하고 위험한 인간의 본성을 세워 놓습니다.
‘피가 흐를 것이다’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피로 물든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땅을 파는가? 가족과 신념은 어디까지 이용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직시하게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인간의 욕망, 신념, 그리고 고독의 실체를 영화로 느끼고 싶다면,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반드시 봐야 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