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는 흔히 ‘현실을 기록하는 장르’로 인식됩니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다큐멘터리는 특정한 사회 문제, 역사적 사건, 혹은 인간의 삶을 다루며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한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진실’이라는 공식은 과연 절대적인 것일까요? 특히 2012년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은 이러한 믿음을 철저히 뒤흔든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 1965년 대학살의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저지른 학살을 “영화 형식으로 재연하게” 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윤리적 경계를 대담하게 시험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작의 연출, 고백의 의미, 그리고 트라우마의 재현 문제를 중심으로 다큐멘터리가 안고 있는 윤리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봅니다.
조작: 다큐멘터리의 진실은 연출되는가?
다큐멘터리는 본질적으로 ‘현실의 기록’이라는 특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현실을 기록한다는 것은 곧 특정한 시선과 의도를 바탕으로 필터링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액트 오브 킬링』에서는 이 전제가 매우 극단적으로 구현됩니다. 감독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가해자들에게 직접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학살 장면을 “영화처럼 연기해 보라”라고 제안합니다. 이들은 영화 속 장르(누아르, 뮤지컬, 액션 등)를 차용해 살인을 재연하며, 이는 충격과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장면들은 명백한 ‘연출’이며, 다큐멘터리의 전통적 개념에서는 ‘조작’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조작이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독특한 접근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표현할 때 나타나는 언어, 태도, 장르 선택은 그들의 심리와 권력의식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을 두고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평론가와 학자들은 감독이 지나치게 가해자의 관점에 몰입함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배제하고, 윤리적 균형을 잃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가해자들이 마치 “영화감독처럼” 자신의 범죄를 재현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불쾌함을 주며, 진실이 소비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연출이 결국 또 다른 ‘조작’이 되는 순간,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구성된 진실’이 됩니다.
고백: 가해자의 자백은 윤리적인가?
『액트 오브 킬링』에서 가장 충격적인 지점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자신의 학살 행위를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백은 ‘반성과 회개의 서사’를 담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 영화 속 고백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가해자들은 오히려 자신을 영화 속 영웅처럼 연기하며, 범죄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진정한 의미의 고백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자기 합리화의 또 다른 형태일까요? 감독은 그들의 발언과 행동을 날것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편집을 통해 관객에게 비판적 시선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장면들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도 분명합니다. 가해자의 고백이 카메라를 통해 확산되는 순간, 그 발언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또다시 상처를 입을 수 있으며, 관객은 혼란과 역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자백이라는 것은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청자의 반응과 맥락에 따라 윤리적 의미가 부여됩니다. 고백이란 책임을 전제로 한 행동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그 책임의식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러한 고백을 그대로 담았을까요? 그것은 진실의 복잡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자,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악’의 모습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흔하며, 위험한 것인지 드러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트라우마: 피해자의 기억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액트 오브 킬링』의 독특한 점은, 거의 전적으로 가해자의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직접적인 인터뷰는 극히 제한적으로 등장하며, 대부분은 가해자의 회고와 재연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의도된 연출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트라우마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흔적입니다. 이러한 고통을 제삼자가 대신 재현하거나 말할 수 있을까요? 감독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그 부재 자체로 학살의 구조적 폭력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또 다른 침묵과 억압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위험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을 재현하는 행위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권력의 행사이기도 합니다. 누가 말하고, 누가 편집하며, 누가 보게 되는가에 따라 진실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카메라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소비’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2차 가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강렬한 문제작입니다. 조작된 연출, 가해자의 고백, 피해자의 침묵을 통해 우리는 ‘진실’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기록 장르가 아니라, 그 자체로 권력과 표현, 기억, 책임이 얽힌 복합적인 미디어입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볼 때, 단순히 “무엇이 사실인가?”를 묻는 것을 넘어 “그 사실이 어떻게 보이고, 누가 말하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도 책임이고, 침묵하는 것도 책임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그런 윤리의 경계를 우리 모두에게 묻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비판적 시선으로 읽어야 하며, 표현의 자유와 윤리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