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그리고 둘(一一, Yi Yi, 2000)』은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거장, 에드워드 양(Edward Yang) 감독의 마지막 장편이자,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가장 정제된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서, 삶, 죽음, 세대, 관계, 기억, 관찰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로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빛나는 것은 에드워드 양 특유의 미장센입니다. 그는 말보다 화면으로 이야기하며, 프레임 속에 감정과 시간, 인물과 세계의 거리를 정교하게 설계합니다.
본 글에서는 『하나 그리고 둘』이 왜 지금 다시 봐야 하는 영화인지, 그리고 그 미장센이 왜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완전 해석해 보겠습니다.
1. 고요함 속에 균열을 감지하게 하는 정적인 시선
『하나 그리고 둘』의 가장 큰 특징은 정적인 카메라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조용히 응시합니다. 마치 감정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흐르는 공기를 잡아내는 듯한 방식입니다. 이는 극적인 감정의 폭발보다는, 감정이 축적되고 침전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데 탁월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NJ가 사무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이 아닌 뒷모습과 창에 비친 도시의 풍경을 담습니다.
이때 화면은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는 NJ의 내면세계, 다른 하나는 그를 둘러싼 사회적 현실.
이 두 세계는 겹쳐져 있지만,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고,
관객은 그 거리감 속에서 NJ의 외로움을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영화는 유리창, 거울, 창문, 모니터 화면 등 ‘반사’와 ‘투영’이라는 시각적 장치를 통해
인물의 분열된 자아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시각화합니다.
이러한 장치들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개인과 세계, 주체와 타자 사이의 거리를 끊임없이 인식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에드워드 양의 정적인 미장센은 사건 중심의 서사보다는 감정의 맥락을 전달하는 도구로 작용하며,
관객 스스로가 인물의 감정을 해석하게 만드는 ‘사유적 영화 문법’을 만들어냅니다.
2. 인물과 공간의 거리로 감정을 말하는 장인
『하나 그리고 둘』에는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등장하지만,
감독은 인물들 사이의 대화보다 ‘물리적 배치’와 ‘공간의 구성’을 통해 심리적 거리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NJ는 식탁의 끝자리에 앉아 있고, 아이들은 반대쪽 끝에서 이야기합니다.
화면 구성상 이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거리감은 단순한 연출의 선택이 아닌 감정의 시각적 메타포입니다.
또한 영화는 다중 시점 구조를 채택하며,
인물 각각의 내면을 따로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에피소드가 많은 것이 아니라,
각 인물이 동일한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감정을 갖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때 에드워드 양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공간 속에 놓인 위치, 조명, 움직임의 리듬 등으로 전달합니다.
예:
- 양양은 아버지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카메라로 무언가를 ‘기록’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려 합니다.
- NJ는 과거의 연인과의 만남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지만, 영화는 그 재회의 정점을 침묵과 정지된 화면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인물 간의 직접적인 대화보다 더 깊은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에드워드 양은 공간을 심리적으로 활용하는 감독입니다.
병실, 엘리베이터, 호텔방, 교실, 결혼식장 등
모든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감싸는 감정의 틀로서 기능합니다.
3.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그리고 보여주지 않고 느끼게 하는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미장센은 **“감정의 직접 묘사를 피해 가며 더 깊은 감정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감독은 중요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외도 장면, 죽음의 순간, 고백의 클라이맥스…
이 모든 사건은 화면 밖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일부 관객에게는 ‘불친절한 연출’로 느껴질 수 있으나,
이 방식은 관객의 상상과 감정이입을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더 깊은 몰입감과 여운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감정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감독은 음악도, 카메라 이동도, 클로즈업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을 침묵과 거리로 밀어내며,
관객 스스로가 그 감정을 해석하고 마주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미장센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의 예술.
에드워드 양은 카메라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으며,
당신은 지금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결국 『하나 그리고 둘』은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감정을 묻고, 감정을 받아내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미장센의 방식은
21세기 이후의 영화 문법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론: 침묵, 거리, 시선… 그리고 삶의 진실
『하나 그리고 둘』은 영화가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유와 감정, 존재를 탐색하는 철학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작품입니다.
에드워드 양은 이 영화에서
–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 인물의 갈등을 갈등 구조로 드러내지 않고
– 사건을 장면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대신,
프레임 안에서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감정의 결을 그려냅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매번 볼 때마다 다른 해석과 감정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삶의 시기, 나이, 관계의 변화에 따라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이 영화의 프레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십시오.
에드워드 양의 침묵 속에는
당신이 말하지 못한 감정이 고요하게 숨 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