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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과 예술이 담긴 3D 영화

by MovieEasy 2025. 12. 1.

언어와의 작별 영화 포스터

 

『언어와의 작별(Adieu au langage, 2014)』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가 처음으로 3D 기술을 도입한 실험 영화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형식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한 예술적 도전이다. 고다르는 단순한 스토리텔링이나 전통적인 영화 문법에서 벗어나, 시각과 청각, 이미지와 언어, 감정과 사유가 충돌하는 낯선 경험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 '영화란 무엇인가', '언어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3D라는 기술적 도구를 단순한 시청각 확장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언어 해체의 도구’로 변형해 고다르만의 영화적 철학을 구축한 작품이다.

고다르가 바라본 언어의 실패: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의 충돌

『언어와의 작별』은 영화 속 언어와 이야기, 대화의 기능을 전복하는 실험이다. 고다르는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 간의 명확한 플롯과 관계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대신, 불연속적이고 때로는 무의미한 대화, 반복되는 이미지, 부정확한 내레이션을 통해 언어의 부재, 혹은 무기력을 드러낸다. 이러한 방식은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 특히 자크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 개념과 닮아 있다. 언어는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끝없이 유예되고, 해석되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철학은 고다르의 영화에서 철저히 시청각적으로 구현된다. 영화에서는 단어나 문장이 아닌 이미지와 소리의 불협화음이 중심이 된다. 관객은 인물의 심리나 전개 상황을 따라가기보다, 마치 미술 작품 앞에 서 있는 관람자처럼 그 조각들을 느끼고, 연결하고, 질문하게 된다. 예컨대, 고다르는 개의 시선을 따라가며 인간과 자연, 언어와 침묵의 경계를 흐린다. 개는 말이 없지만 존재한다. 인간은 말을 하지만 존재를 놓친다. 이것은 언어가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고다르의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의식을 시사한다. 또한 영화 속 내레이션은 종종 화면과 무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의미 없는 속삭임처럼 처리된다. 이는 언어와 이미지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 불일치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다는 고다르의 영화적 신념을 표현한다. 그는 전통적인 영화의 목적—이야기 전달—을 거부하고, 관객에게 사고의 자유를 제공하는 ‘영상 철학’을 실현하고자 했다.

3D 영화의 해체와 재구성: 기술이 철학이 되는 순간

일반적인 3D 영화가 현실감과 몰입감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것과 달리, 『언어와의 작별』은 3D 기술을 오히려 관객의 감각을 분열시키고 낯설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한다. 고다르는 좌우 렌즈에 서로 다른 영상을 투사하여 관객이 두 눈으로 동시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도록 만들었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스스로 포커스를 이동하거나,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혼란을 겪게 된다. 이는 우리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식 과정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연출이며, 시각의 일치가 곧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장면 구성은 기술의 극대화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의 한계와 인식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고다르는 3D를 단순히 입체감 구현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 언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그는 이미지가 갖는 폭력성—정형화된 시선과 강요된 해석—을 비판하며, 관객 스스로 ‘보는 방식’을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3D 장면과 2D 장면이 혼재되어 등장하며, 각각의 방식이 가진 정보 전달 구조와 감정적 거리감을 실험한다. 일부 장면에서는 깊이감이 철저히 억제되며, 플랫한 화면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공간감이 극단적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이 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편안한 감상을 허용하지 않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반드시 일관성과 몰입만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다르에게 3D는 단순한 시각 효과가 아니라 ‘영화 언어를 해체하는 도구’이며, 기술이 사유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철저히 영화 언어의 형식과 기능을 해부하며, 관객이 영화와 맺는 관계 자체를 재정립하려 한다. 『언어와의 작별』은 따라서 기술적 실험이자 철학적 저항이며, 영화 매체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재정의 이다.

프랑스 예술 정신과 철학의 정수, 영상으로 구현되다

『언어와의 작별』은 프랑스 철학과 예술 전통의 정수를 영화라는 매체로 치환한 작품이다. 고다르는 이 영화에서 들뢰즈, 사르트르, 파스칼, 하이데거 등 다양한 철학자의 텍스트를 인용하거나 암시하며, 영화를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문자 그대로 철학적 문장을 시각화하거나, 사운드와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논리적 구성 대신 감각적 사유를 유도한다. 프랑스 회화와 문학의 영향도 두드러진다. 영화의 색감은 마치 고흐나 마네의 회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풍부하며, 이미지의 정렬과 구도는 회화적인 리듬을 따른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자연 풍경, 개, 책, 인물의 고정된 시선 등은 고다르 특유의 미학을 형성하는 요소다. 그는 인물 중심의 구도보다 배경이나 오브제의 존재감에 집중하며, 시선을 통해 의미를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선 자체를 문제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 속의 인용들은 영화사와 예술사를 자유롭게 넘나 든다. 에이젠슈테인, 브레송, 바흐, 말러, 셰익스피어, 플로베르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이 인용되며, 각각은 영상 속에서 의미의 파편으로 기능한다. 이 인용들은 하나의 맥락 속에 연결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와 동시에 해체의 충격을 제공한다. 이처럼 『언어와의 작별』은 프랑스 예술 정신—자유, 실험, 사유, 감성—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다르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익숙한 서사 구조와 시청방식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질문과 충돌, 침묵과 분열을 배치한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이해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영화’ 속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단지 시네마의 진보가 아니라, 예술적 언어 자체의 진보로 이해될 수 있다.

『언어와의 작별』은 장 뤽 고다르가 이룩한 영화 언어 해체의 절정이자, 3D 기술을 통해 영화 철학을 구현한 전례 없는 실험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가?”, “언어는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우리는 과연 보고 있는가?” 고다르의 이 도발적 질문은 『언어와의 작별』이라는 영상 철학을 통해 오늘날 시청각 예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영화를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구성하게 만드는 작품이며, 프랑스 철학과 예술의 정수를 가장 날카롭게 구현한 시네마적 사유의 결정체다.